효월 등장인물
베네스/하이델린의 행동
14등분 쪼개기에 대해.
먼저 읽어보면 좋을 제작진 인터뷰
https://fusetter.com/tw/cGM0Kdei
1.
일단,
베네스/하이델린은 자신의 14등분 쪼개기를 정당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걸 정당화 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게 베네스에 대한 비난?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효월 통틀어
내가 가장 감동 받았고 눈물 흘렸던 파트가 바로 베네스 파트였지만
캐릭터를 좋아하는 마음에 정당화부터 하기보다,
정당화 하지 않은 채로 이 행동을 처음부터 고민해보고 싶다.
2.
고대인들은 재앙의 근본이 되는 메테이온을 처리 못한 채
동포 절반을 희생해 종말의 재앙을 일시적으로 막아냈을 뿐이다.
그 상황에서 다시 또 조디아크를 이용해
과거로 돌아가려는 고대인들의 모습을 보고서,
베네스는 세상을 쪼갰고 인간의 에테르를 약화시켰다.
이것이 그가 생각해 낸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상에 생겨난 고통의 총량은 늘었다.
인간 자체도 연약해졌거니와 그게 다시 14배로 늘었으니까.
어쩌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것이 자비"라는
메테이온의 말이 맞다고 생각될 정도로.
3.
게다가 아씨엔에 의해 멸망한 세계만 해도 14개중 7개다.
고대인 입장에서야 50%의 멸망일 뿐이고
(조디아크때도 동포 절반을 태운 족속이다.)
그마저도 온전한 회귀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세상을 살던 사람들에게는 온 세상의 멸망일 뿐이다.
물론 그 책임을 전부 베네스에게 돌릴 수는 없겠지.
에메트셀크가 원형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의도한건
같은 고대인으로서 그의 행동을 예상한 면이 있어서 겠지만
기억을 잃은 그가 아씨엔/솔 황제로서 행동할 모든걸 예상했을까.
(에메트셀크가 원형으로 유지된게 우연이 아니라는 건
극중 대사 + 제작진의 인터뷰 참고 했음)
한 세상이 14개로 늘어났고 아씨엔에 의해 7개의 세상이 멸망했다.
세상을 쪼갠 후 벌어진 모든 일이 베네스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베네스가 세상을 쪼개기로 마음 먹었을 때
예상한 여러 상황 중 하나일거라는 생각은 한다.
4.
베네스, 하데스, 헤르메스 등 고대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들-고대인 특유의 나이브함을 기본으로 깔아야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들에게 그리스신화의 이름을 붙힌건 매우 적절하다.
인간의 원형라는 의미에서 고대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의 능력이나 사고방식을 보면 그냥 신이라고 봐야겠지.
베네스가 실행한 계획도
그만한 능력, 그만한 시간감각, 그만한 감정적 한계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게 가능한 건 신이다.
(헤르메스도, 하데스도 마찬가지.)
5.
현대에서 엘피스 꽃의 색은 꽤 자주 바뀐다.
이미 감정의 영향을 받아 색깔이 바뀌는 꽃으로 알려져 있기도하고
빛전이 한송이를 꺽어 간직하고 있는 동안에도
빛전과 동료들의 마음에 영향을 받아 색이 바뀐다.
반면 고대인시절에 엘피스 꽃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건 헤르메스 뿐이었다.
이 말은 베네스조차도 그 꽃의 색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젬이라는 상담직책을 고려하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6.
고대인은 감정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강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고대인들이
(현대인이 느끼는 정도의)강한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느껴본적이 없어서
오히려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잘 할 줄 모른다고 본다.
헤르메스의 좌절과 타락,
하데스를 비롯한 원형들의 세계통합계획,
그리고 베네스의 계획마저도
다 감정적으로 미숙한 고대인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고대인들을 신이라고 했으면서 왜 오히려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냐면
내가 생각하는 그리스 신들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감정을 해소하거나 참아내는 능력에 있어서는 매우 어리다.
내가 그리스 신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억지해석인거면 ㅈㅅ합니다만,
어깨 너머로 봐온 신화 속 신들의 모습은 그랬다.
능력이 강하면 강할 수록 더 치기어려지는 면이 있는 것이다.
현세에서도 돈(=능력)이 많은 사람에게 쉽게 생기는 "철없는" 부분이 있듯이.
7.
베네스의 "쪼개기"로 인해 세상은 나뉘었고 인간의 에테르 능력은 줄었고
그로 인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아지면서 인간의 고통은 늘었다.
고통이 늘었다는 것은, 단순히 마이너스적인 감정만 늘었다는게 아니다.
'고통을 극복했을때의 기쁨'은 '고통이란걸 모를 때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폭, 다이나믹레인지는
고대인시절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어졌다.
고통&기쁨 뿐만이 아니라 이전엔 아예 느낄일 도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감정을 경험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게 베네스가 택한 "인간의 뒤나미스를 강화하는 방법"이다.
8.
그러나 베네스가 생각하고 실행한 그 방법은 매우 이성적이기만 한 방법이었다.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범위나 양이 커진 현대인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베네스도 고대인으로서, 현대인에 비해 제한된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베네스도 엘피스 꽃의 색을 변화시킬 수 없는 존재였다.
9.
물론 이것은 베네스가 계획을 실행하던 시점의 이야기다.
그 이후의 장대한 시간 동안 인간의 생장수장과 희로애락을 관찰한 그에게
감정에 대한 배움이 없었을거라 생각하긴 힘들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감정적으로, 뒤나미스적으로 크게 성장한 존재는
바로 베네스/하이델린 자신이 아닐까.
적어도 파14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에서의 베네스는
엘피스 꽃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였을거라고 본다.
10.
베네스에 의해 쪼개진 인간들만이 아니라
베네스 자신의 감정도 성장했다고 가정한다면..
이 가정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이보다 비극적인게 있을까.
베네스가 하데스를 비롯한 아씨엔들의 행동을 예상했을거라고 앞서 말했다.
같은 고대인으로서 사고방식은 비슷했을테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인간들(자기들 입장에서는 未인간 수준이겠지)이
겪을 고통에 대해서는 예상하지 못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베네스도 감정을 배운 이후엔..?
10-1
베네스의 계획은 나이브한 고대인=神이었기 때문에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근데 이제 이전엔 못 느꼈던 감정을 알게 된다면?
그의 감정이 미약할 때 실행해버린 그 계획을
그의 감정이 성장하면 성장할 수록 후회 했을 것이다.
오히려 베네스가 세상을 쪼갤 때
인간에게 가장 크게 품었을 마음/감정은
(소름 돋게도) "희망"이었을거라고 본다.
10-2
그렇다면 곧 세계를 쪼개던 시점에서
이제 약해질 앞으로의 인간에 대한 미안함은 얼마나 컸을까?
소름 돋게도 베네스가 처음 본 현생인류는 빛전이었다.
빛전의 모습을 보며 (미래의) 현생인류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띄웠을지 생각해보면 조금 무섭다.
빛전과 동료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절망이라는 독 앞에 무릎 꿇을때
끝까지 살아남아 희망을 틔운, 아이테리스의 "위쳐"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안그래도 나이브한 고대인인 베네스가,
유일하게 만난 현생인류가 빛전이라면,
베네스가 현생인류의 고난을 상상하게 하는 데에는
그닥 좋은 조건이 아니었을 것이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크게 품는다는게 좋은것만은 아니다.
절망을 제대로 관측해낸 것이 아니니까.
베네스가 뒤나미스적으로 성장해가고
감정에 대해 배워나갈때,
"후회, 미안함"이라는 감정은
끝없이 끝없이 커져나갔을 것이라고 본다.
11.
세계가 14등분 되면서
고통의 총합도, 감정의 총합도 늘었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각 사람은 모두 자기 분량 만큼의 고통을 느낄 뿐이다.
자기 분량 외의 고통까지 짊어지는 사람은 망가진다.
(자기가 마땅히 느껴야 할 고통까지 외면해도 사람은 망가진다.)
12.
그런데 베네스는 끝까지 망가지지 않았다.
세계를 14개로 쪼갠 책임을 져야하는 베네스는,
그 책임으로 인해 돌아오는 감정들을 자신의 분량으로 짊어져야한다.
냉정한 말이지만 어쩔 수 없다.
처음엔 그걸 다 느낄 수 없었기에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이 늘 수록
그에게 부어지는 감정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날이 갈 수록 해가 갈 수록
그에게 부어지는 감정의 총량은 늘어가기만 했을 것이다.
1리터 짜리 용기에 1리터의 물이 부어질 때만해도 할만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2리터 짜리 용기에 2리터의 물이 부어질 때만해도 할만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물의 양은 무한했고, 그는 그것을 처음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에 대해 알게되었을때 -엘피스 꽃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그는 알았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알았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할지도 "예상"했을 것이다.
13.
고대인 때보다 약해진 인간은
고대인시절 못 느끼던 감정을 느끼면서
뒤나미스를 성장시켰다.
"아주 강한, 여러 종류의 감정을 느끼면서 뒤나미스가 성장한다"면
베네스도 성장했을 것이다. 뒤나미스 적으로.
베네스는 에테르적으로 인간만큼 약해지지 않았다.
그런 그가 뒤나미스적으로 성장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감정의 총량이 부어져야했을까.
14.
시간이 흘러 세계통합이 진행되고 조디아크가 강해지면서
하이델린의 힘은 약해졌다. 그의 에테르는 옅어졌다.
그런데도 버텼다. 이거야 말로 초월하는 힘이 아닌가.
베네스와 하이델린을 굳이 존재적으로 구분하라면,
나는 뒤나미스의 성장여부를 가지고 말할 것이다.
감정을 모르는 고대인이었던 베네스는
뒤나미스적으로도 성장한 하이델린이 되었다.
그가 겪었을 "고통의 총합"을 따져본다면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도,현인간보다도 더,
뒤나미스적으로 강한 존재가 되었다.
15.
고대인으로서 갖고있던 에테르를,
(+어머니 크리스탈에 축적해온 에테르)
인간과 세상의 모든 고통감정을 통해 성장한 뒤나미스를,
그 양쪽을 다 갖고 있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하이델린이야말로 아이테리스의 신이다.
그 만큼 고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현대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없다.
베네스가 야만신 하이델린의 핵으로써 사용될 때
그는 무수한 양의 에테르를 부여받았을 것이다.
이후 뒤나미스 적으로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되었을 때
그는 야만신 이상의 존재가 되었다.
16.
하이델린은 에테르로만이 아니라 뒤나미스로서도
누구보다 강한 존재가 되었지만
그의 뒤나미스를 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앞서 말했던 후회와 절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뒤나미스가 누구보다도 성장했기 때문이며
과거에 만났던 "빛전"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빛전을 만난 과거가 성립되기 위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희망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가 과거에 개입했을 때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그라하티아와 1세계를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그라하티아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베네스는 자기가 본 그 미래가 되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렇기 때문에 89렙던전 이후 토벌전에서 만날 때에도
"엘피스에 다녀온 후의 당신"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전까지의 빛전은 내가 만났던 그 빛전이라 단정할 수 없으니까.
이 순간이 야만신 하이델린으로서는 소명을 다한 시점
베네스로서는 뒤나미스적으로 구원을 받은 시점이 아니었을까.
여태까지 모아온 어머니 크리스탈의 에테르를 쓸 시점이 되었고
그의 뒤나미스가 그 어떤 때보다도 기쁨으로 돌아선 때일 것이다.
17.
그러니,
하이델린과 빛전&새벽의 싸움은 에테르가 아니라
뒤나미스에 기반한 전투였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종말의 재앙에 맞설 힘이 있는 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하이델린에게는 아이테리스에 존재하는 누구보다도
강한 뒤나미스가 있다.
그의 에테르는 이미 존재가 사라질 정도로 미약해졌지만
사라지지 않고 버틸 뒤나미스를 갖고 있었다.
그러니 빛전새벽과 하이델린의 싸움은
뒤나미스적이었을 것이며
파티원들이 절대 쓰러지지 않는 것에 대한
메타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 (메인 트러스트 전투 얘기)
18.
고대인은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만족했을때 별바다로 돌아간다.
베네스는 비록 그 혼이 별바다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그 어떤 고대인보다도 자신의 소명을 이루어냈다는 만족감과 기쁨이 컸을 것이다.
고대인 시절 아젬 자리에 물러서고 나서도 '죽을 이유를 찾고 있다'던 그는
죽으면 안 될 이유를 갖고 야만신으로서 신으로서 버텨왔지만
이제야 비로소 죽을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이델린의 죽음을 절망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미칠듯이 슬프고, 그에게 종말의 재앙 이후의 세상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지만
하이델린은 이미 그 이후의 세상이 있을거라 마음으로 확증했을 것이다.
그에게 후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정말 누구보다 뒤나미스적으로 성장한 존재라면
그가 이제까지 품어온 세상의 절망 고통의 총합보다
그가 그 순간 느낀, 소명을 다해냈다는 기쁨이 더 컸을거라고 나는 믿고 싶다.
하이델린은 세상 누구보다도 깊이 절망했으나
그 절망을 채우고도 넘칠 정도의 기쁨을, 소명을 이룬 성취감을,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그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껏 느끼며 안식에 들어갔을거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