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월의 종언>까지 보고 쓴 FF14 세계관 후기:
왜 내 WoL은 하이델린과 마찬가지로 아젬을 계승한 건지
아씨엔 중 유일하게 신화의 언어(mythos)를 다룬 이가 아젬이었기 때문에
내용이 제법 기니 갓명곡 Flow를 틀고 찬찬히 읽어주세요: https://youtu.be/vWgpJ0k820w
칠흑~효월 동안 공식적인 아젬의 역할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여행자'로 나옵니다
근데 좀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씨엔 14인들의 담당 역할... 마법 동물 식물 법 잘 나오다 뜬금없이 이동형 고민상담가.
그 이유는 아젬이 아씨엔 중 유일하게 뮈토스를 전담으로 맡고 있는 역할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뮈토스 전문'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쓸 수 없으니 '여행가&상담가'라는 역할로 우회해서 표현했다 생각합니다.)
(이 개념 자체만을 전문철학적으로 설명하긴 굉장히 어렵고 제가 그정도 철학적 경지에 다다르지도 않았지만) 뮈토스(mythos)는 로고스(logos)의 반대 개념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논리적이고 입증할 수 있는 말이나 논리를 로고스(logos)라고 하고, 비논리적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말과 생각들을 뮈토스(mythos)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로고스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세상사를 논리로 풀어갈 때, 이 뮈토스는 사람과 사람 간의 행적들, 사람의 감정들, 소망, 욕망, 상상을 가감없이 풀어냅니다.
로고스는 모여 가설이 되고 학문이 되지만 뮈토스들은 모여서 이야기가 되고, 신화가 되지요. 그래서 뮈토스를 신화의 언어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을 알고 '아젬'의 역할을 다시 본다면 단순한 인생조언가 이상으로 아젬이 고대 세계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아씨엔들이 모두 '로고스'적인 역할을 맡고 있을 때, 혼자서 뮈토스적인 역할을 맡고 있거든요. 이치로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감각들, 논리적인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소망, 입증되지 않았을 뿐 세상에 존재할 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들, 그 모든 뮈토스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젬입니다.
그렇기에 선대 아젬(하이델린)도, 전 아젬도, 현 아젬(WoL)도 이미 수많은 가설들로 입증된 종말이라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신화-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젬이 보고 있는 현실은 로고스로 입증된 끔찍한 마지막이 아닌, 인간이 갈 수 있는 모든 가능성 중 하나였으니까요.
87퀘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하이델린의 전신이었던 아젬 베네스가 "이 모든 아픔을 묻고 나아가야 합니다.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믿어야 합니다."라고 역설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역시도 세계의 뮈토스를 믿었기에 가능했던 말이었겠죠. 하이델린은 자신이 보지 못한 또다른 이야기를 믿었기에 자신의 존재 자체를 담보로 하면서 또 다른 이야기-신화-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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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얘기를 보다보면 '어 근데 이거 개념 듀나미스랑 겹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맞습니다. 수많은 듀나미스들 역시 뮈토스에 속하는 개념입니다.
그렇기에 하이델린이 듀나미스를 알고, 현 아젬인 WoL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주며(엘피스 꽃) WoL과 WoL의 동료인 새벽으로 하여금 듀나미스의 힘을 이끌어내도록 합니다.
전대 아젬(아마도 에메트셀크의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하잖아요.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면 그 길은 반드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가능성, 의지를 풀어내는 역할을 맡은 아젬이니만큼 그들은 아씨엔들 중에 듀나미스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듀나미스들을 이어 가는 길 끝에, 하나의 이야기(신화)가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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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념을 알고 본다면 '엘 피스'에서 만났던 고대인과의 관계가 조금 더 재밌게 보일 수 있습니다.
1. 창조 관리국의 관리국장이었던 '휘틀로다이우스'는 에메트셀크와 전대 아젬의 사이를 중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창조의 힘은 사람의 상상과 가능성(뮈토스)를 실체가 보여 입증할 수 있는 존재(로고스)로 잇는 첫 단계이기도 하지요. 실제로 휘틀로다이우스는 '로고스적 속성'에 치우친 사람 중에서는 가장 '뮈토스적 가능성'에 열려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젬-휘틀로다이우스-에메트셀크 사이에 좋은 다리가 되어 줍니다.
2. 에메트셀크는 전대 아젬과 현 아젬(WoL)을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며 기다립니다. 그건 에메트셀크가 담당하고 있는 명계(별바다)의 속성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에메트셀크는 (칠흑에서도 그렇고 엘피스에서도 그렇지만) 굉장히 로고스적 이데아(?)를 가진 존재지만, 명계는 로고스적 속성(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죽음의 존재)과 뮈토스적 속성(수많은 사후세계의 상상과 죽음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로고스적으로 늘 입증할 수 있지만(인간은 모두 죽으니까요) 그 이후의 세계는 모두 수많은 이야기들과 상상과 신앙-뮈토스-에 맡겨야 합니다. 그렇기에 에메트셀크는 길고 긴 입증된 죽음 끝에서 마지막으로 만날 자신의 이야기, 아젬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 헤르메스(전 파다니엘)는 가장 먼저 '듀나미스'라는 힘을 입증한 아씨엔입니다. 비슷한 창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왜 휘틀로다이우스보다 헤르메스가 이 듀나미스를 먼저 발견해 냈을까요? 그 역시 헤르메스가 세계와 생명에 큰 애정을 가진 나머지 자신이 입증할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든 로고스적 생명체를 넘어서, 자신이 만나보지 못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뮈토스적 생명체들까지 자신의 관심사에 두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메테이온 자매들을 생각해보면 헤르메스가 생명체의 어느 가능성까지 사랑해보려 노력했는지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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뮈토스적 존재를 대표하는 아젬은 정말 잘.. 만든 세계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게임 이름을 생각해보세요. Final Fantasy.
마지막 신화. 마지막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