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에 나타나는 청명의 자아 분열 양상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일종의 검검 관계 분석일수도?)
청명이는 분열된 자아를 가지고 있죠… 극심하게 분열된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화산검협으로서의 자신이 있고 매화검존으로서의 자신이 있어요. 이 둘이 차라리 시공간적으로 연속되어 있었다면 화산검협 청명은 매화검존 청명을 결국 받아들일수도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화산검협과 매화검존은 아주 근본적인 유전자 구성까지 다른 서로 다른, 단절된 인물이에요. 그래서 청명이는 매화검존이었던 자신과 구별되는 화산검협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라는게 전혀 다른 환경에 떨어지기만 해도 이전의 자신과 구분되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고 애쓰기 마련인데, 청명이는 환경만 달라진게 아니라 정말 “내가 여전히 화산의 사람이다“라는 것 빼고 모든게 달라졌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죠. 개인적으로 구화산에서 화산이라는 문파에 그다지 애정이나 소속감을 보이지 않았던 청명이 현화산에서 화산에 미친듯이 집착하는 게 그런 까닭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중요한 건, 화산검협 청명은 매화검존 청명과 자신을 구분지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내가 지금 이 곳, 이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구분을 지으려면 필연적으로 '매화검존 청명'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정해야해요. 그런데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산검협 청명에게 매화검존 청명이 갖는 의미는 자신의 가장 극심한 외상 경험이라는 겁니다. 어렸을 때는 찬란하고 아름다웠을지 몰라도, 결국 그 끝은 지독한 외상 사건이었죠. 그리고 그 외상 사건은 매화검존이라는 이름의 긴 시간 전체를 외상 경험으로 생각하도록 물들입니다. 내가 어릴 때 아무리 즐거웠어도 결국 그건 시공간적으로 연속되어 정마대전으로 이어지니까요. 아무리 즐거웠던 어린시절의 경험을 떠올린다고 해도 결국 "끝에 그렇게 될 줄도 모르고 정말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산검협 청명은 매화검존 청명에 대해 상반되고 모순된 태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화산검협 청명은 자신의 외상 경험을 부정하고 싶어해요. 살기 위해서죠. 살기 위해서, 그건 지금의 내가 아니다, 그건 그때의 다른 내가 정말 바보 같았다, 그 때의 내가 어리석었고 철도 안 든 애송이였다, 라고 격하시키는 거죠. 그래야 지금의 내가 좀 더 나아졌다는 의미가 되고, 지금의 내가 거기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되고, 지금의 나는 다를거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화산검협 청명은 자신의 외상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때와 다르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을 거다, 반드시 이번엔 내가 천마의 목을 벤다, 반드시 마는 돌아오고 그것에 맞서 싸우는 건 반드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라고 생각해요. 이건 확연한 ptsd 주요 증상입니다. 애초에 청명이 외상 경험에서 자유로워졌다면 마교에 얽매이지 않았겠죠. 반드시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도 안 했을 거고요. ptsd가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손상은 환자의 '세상은 믿을만한 곳이 못 되며 언제나 어디서나 다시 외상 사건이 닥쳐올 것이 분명하므로 나는 언제나 긴장해야 한다'라는 강력한 신념임을 기억하세요.
그렇기 때문에 청명은 의식적 수준에서 매화검존을 부정하고 애송이라며 비하해도, 1755와 같은 꿈 속의 무의식적 수준에서는 오히려 매화검존이 자신을 부정하고 애송이라며 비하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여전히 매화검존이라는 이름의 외상 경험에 얽매여 있고, 나날이 그건 강력해져만 가니까요. 애초에 그 매화검존도 결국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매화검존을 비난하고 비하할 때, 청명은 지금의 자기 자신 또한 비난하고 비하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너는 왜 그랬어? 라고 과거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을 비난하고, 그럴수록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경험에 더 깊이 빠져들고, 그럴수록 과거의 자신은 더 격렬하게 현재의 자신을 비난하게 됩니다. 결국, 화산검협 청명을 비난하는 것은 매화검존 청명이 아니라, 그 역시 화산검협 청명인 겁니다. 진짜 과거의 매화검존 청명이 나타난다면 화산검협 청명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건 모르죠. 1755 꿈속의 대화는 매화검존 청명과 화산검협 청명 간의 대화가 아니라, 화산검협 청명과 화산검협 청명이 상상한 매화검존 청명의 대화입니다. 그러니까, 둘 다 화산검협 청명이라는 거죠. 결국, 청명이는 살기 위해서 화산검협과 매화검존을 분리시켰는데, 그건 사실 둘 다 그냥 '청명'이라는 사람의 일부분이고 자아 분열을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서, 그게 결국 청명이를 더 절벽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소립니다.
따라서 청명이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는 일입니다. 예전에 화산 귀환의 다른 모든 인물들은 삶의 단계에서 내가 어떻게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산성 대 침체감'의 고민을 하고 있는데, 청명이만 노년기의 '자아통합 대 절망'의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렇습니다. 청명이는 자아통합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내 삶이 가치 있었는지, 만족스러웠는지, 그런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화산검협 청명의 내면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자는 필연적으로 매화검존 청명의 얼굴을 하고 있겠죠. 나이든 화산검협 청명은 어린 매화검존 청명에게 그 사실을 증명해보여야 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화산검협 청명과 매화검존 청명의 결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네가 나이고, 내가 너다, 라고 자신의 외상 경험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그게 청명이의 ptsd 치료에 필수적인 부분이고요. ptsd 치료의 핵심은 '자기 자신의 정신 상태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과정'이거든요. (전문용어로 '정신화'라고 합니다.) 화산검협 청명이, 내 머릿속의 매화검존 청명은 진짜 내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 현재 내가 만들어낸 또다른 이상적이며 동시에 가장 비천한 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끝내 그 모두가 결국은 '나'라는 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바로 극심하게 분열된 자아를 가진 청명의 자아 통합 과정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때가 되어서야 청명이 비로소 자신이 매화검존이었음을 현화산에 밝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가벼이 밝히기엔 매화검존이라는 이름이 청명에게 가지는 무게가 너무나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죠. 현재의 청명 자신도 그 이름이 자신에게 얼마나 거대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잘 모를 정도로 말입니다. 단적으로, 청명이 현화산에 자신이 매화검존임을 밝히는 일은 '자신의 외상 경험을 타인에게 개방하는 일'입니다. 그 어떤 ptsd 환자도 쉽사리 자신의 외상 경험을 개방하지 않아요. 개방하지 못하죠. 왜냐하면 그 경험은 자신에게 너무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그 경험에 정서적으로 압도되지 않고, 또 분열이나 해리되지도 않고서 자신의 외상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때에야 환자는 자신의 외상 경험을 조심스레 개방합니다. 청명이는 한참 멀었죠. 만약 지금 "내가 매화검존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면 저는 오열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건 나의 치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결과를 얻고자 자신의 딱지도 앉지 않은 상처를 뜯어 일부러 벌리는 것이고 그건 청명이에게 또다른 외상이 재발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여하간 그래서... 글이 쓸데없이 길었습니다만... 결론은, 1755에서 당보의 얼굴을 하고 매화검존 청명의 목소리를 하고서 화산검협 청명을 공격하던 것은, 모두 화산검협 청명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며, 그 모든 것이 '청명'이라는 이름 하나 속에서 통합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굉장히 사이코드라마 같죠... 저는 왠지 검검 썰을 이래서 잘 못 풀겠더라고요... 검검을 붙여놓으면 썰을 푸는게 아니라 중간에 끼어들어서 사이코드라마 디렉팅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