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기와 와시즈의 마작 다시 읽기: "고립"과 "연결"을 중심으로
후쿠모토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개인에 대한 짧은 생각...이 길어져서 후세터로 백업하기.
진지한 톤으로 썼지만 그래봤자 오타쿠 망상이니 이런 해석도 있구나 하고 적당히 걸러서 읽어주세요
0. 후쿠모토는 인간을 개별 개체로 보고, 마땅히 독립적으로 존재해야한다고 보는 것 같음.
무뢰전 가이는 작품 자체가 전체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있으며, 자기 머리로 자기가 직접 생각하고 판단해서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음. 작품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고립시켜라"는 문구에는 이러한 주제의식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음. 텐에서 "고립할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아카기가 안락사를 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함.
카이지에서는 주인공인 카이지가 계속 남을 믿고, 구하려는 면모가 강조되어 조금 다른 주제의식이 추가되는데, 이는 인간경마의 나레이션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남.
"돌이켜보면 한없이 고독한 레이스. 주변에 몇 명이 있더라도 결코 서로 도울 수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하면 그것은 이 다리만이 아니다. 언제나 사람은, 그 마음은 고립되어 있다. 마음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 전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해와 애정을 갈구하고, 갈구하고, 갈구하기를 거듭하지만 결국 다가갈 수 없다. 고독한 외길을 가는 세상의 66억 시민들. 천공을 나아가는 한 명 한 명 66억의 고독. 손은 닿지 않는다.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할 수 있는 일은 통신. 그것은 너무나 가냘프고, 진정한 이해와는 동떨어졌을지 모른다. 허나 살아있는 자의 숨결은 희미하게, 그러나 똑똑히 전해진다." - 카이지 인간경마 나레이션 中
특유의 문체로 장황하게 써있지만 "개인은 고립되어 있고, 타인은 영원히 타인이기에 구원은 셀프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서로를 지지할 수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카이지는 저 느슨한 연결에서 사람이 희망임을 느끼지만, 아카기는 그렇지 않음. "고립"을 위협하는 "연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음. 뒤에서 좀 더 얘기할 거임.
1. 작가의 작품에 마작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건 물론 작가가 마작을 좋아해서겠지만, 작품 속 장치로서도 마작은 이 "느슨한 연결"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함.
1개의 머리와 4개의 몸통을 완성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는 마작은 다른 플레이어들에 의해 참 재밌고 괴로워짐. 왜냐, 기본적으로 모두가 같은 패를 사용하기 때문.
내게 필요한 패를 남이 쥐고 안 놔주거나, 버려서 쓸 수 없게 되기도 하고, 누군가가 과하게 크게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시코미를 하는 등 대결의 구도가 변하기도 함. 요컨대 개인전이면서 팀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결국 기본적으로는 본인 배패랑 쯔모가 좋으면 달리 손 쓸 방도가 없는 게임이기도 함.
그리고 마작의 이러한 면모가 후쿠모토가 그리는 인생 속 인간관계와도 닮아있음.
즉, 인간관계를 마작식으로 납작하게 말하자면 "네 배패랑 쯔모가 구린 건 네 탓이라 어쩔 수 없지만, 퐁치깡 정도로 서포트는 해줄 수 있어" 되겠다.
마작을 하는 이들은 마작패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거예요ㅋㅋㅋㅋㅋㅋ
신역이 마음을 담은 한 타가 맛있다고 한 것도 이 연결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지도.
2. 위 내용을 깔고 와시즈전의 오라스를 보자.
우선 아카기와 와시즈의 배패가 재밌음.
와시즈가 배패로 아카기를 죽일뻔한 패는 국사무쌍임.
신이고 뭐고 아무도 필요없이 내가 내 손으로 아카기를 죽이겠다는 마인드로 뽑은게 퐁이든 치든 깡이든 론 아니고서는 남의 패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불가능한, 자기 손으로 오롯이 13종 13패를 뽑아야 하는 국사라는 게 좋다.
작중에서도 와시즈는 쯔모에 의해서만 아카기의 피를 뽑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와시즈가 살기 위해 아카기로부터 "고립"되어야 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함. 하지만 아카기는ㅋㅋㅋㅋ 굉장히 끈질기게 와시즈로부터 론을 노리며 얽히고자 함. 와시즈가 그걸 무시하려 하자 리치봉을 던지면서까지 나를 보라고 말함. 아카기는 연결이 얼마나 사람을 취약하게 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약점을 노리는 고립된 인간인 거임.
그리고 심지어 와시즈가 고립 끝에 완성하려 한 배패 국사무쌍 텐파이는 아카기가 1삭을 4개 뽑아버리는 형태로 저지됨. 즉, 와시즈는 혼자 힘으로 자기 패(국사무쌍)를 완성할 수 없어짐.
아카기의 노림패는 삭패 청일색 다면대기.
와시즈 배패가 자일색, 대삼원, 소사희, 대사희 등이었으면 아카기의 노림패와 연결되지 않았을 텐데 하필 국사라서 연결의 여지가 남아버렸고, 아카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와시즈에게 얽혀들어옴.
끊임없이 "연결"의 취약성을 노리는 아카기는 그 자체로 와시즈의 고립성, 독립성, 나아가 "나"에 대한 위협인 거예요.
3. 전개는 흘러 흘러 와시즈-스즈키의 자일색 대삼원, 그걸 막으려는 아카기-야스오카의 4후로 산캉츠의 구도가 되는데, 이 또한 굉장히 의미심장함.
와시즈는 혼자 만드는 국사무쌍을 실패하고 남의 패를 이용하는 자일색-대삼원으로 향해가고, 아카기는 그걸 저지하기 위한 끈질긴 4후로 산캉츠를 거쳐 투명패 하다카 단기가 됨.
지금까지의 전개에 빗대어 생각하면 와시즈는 아카기로부터 고립되어야만 자기가 살 수 있는데, 이번엔 반대로 동을 뽑아서 아카기를 죽이기 위해 아카기와 완전히 연결되길 택함. 패산의 구멍을 아카기의 가슴으로 인지하고 아카기의 맥을 느껴가며 동을 뽑음. 아카기도 그 순간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으며 고동을 느끼고, 마작패를 통해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던 둘이 진정으로 연결됨.
그 연결 속에서 와시즈는 동을 뽑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함. 연결이 고립을 방해하여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간과한 거임. 고립된 존재로 있기를 포기하고 연결을 선택하자 혼자 남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어버리곤 펑펑 우는 와시즈 진심 너무 안쓰러움... 아카기와의 연결이 없었더라면 그를 죽이는 게 이렇게 힘들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을텐데.
나는 이 때 와시즈의 눈물이 인간 존재의 지독한 외로움을 실감한 눈물이라고도 생각함.
4. 와시즈의 국사무쌍 실패 - 자일색 대삼원이 불완전한 고립이라면, 아카기의 하다카 단기는 어떠한가.
작중에서 아카기는 하다카 단기를 여러번 보여줌. 이러한 하다카 단기는 도저히 잡히지 않는 아카기의 의중에서 공포감, 위압감 같은 게 느껴지는, "알몸"이지만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강조됨.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고립된 패인 거임. 상대방은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며 생기는 그 틈을 노려 위협하고 본인은 고립된 패 뒤에 쏙 숨는 수법이 진짜 악마 같은 건 차치하고... 어쨌든 빽도 뭣도 없이 상대랑 순수하게 맨몸으로 붙는 아카기를 상징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함.
하지만 패가 투명한 와시즈 마작에서의 마지막 하다카 단기는 그 알몸이 그대로 보여서 불완전한 고립이 되는 것 같음. 아카기도 와시즈와의 대결에서 말 그대로 정말 모든 걸 보여준 거임...
이전까지 아카기에게 연결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약점을 드러내고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와시즈의 완전한 연결에 본인의 고립도 일부 포기한 거라구... 아카기가 와시즈를 통해 처음 느꼈다고 한 것도 이 부분 아닐까...
((딴 얘긴데 이거 너무 야하지 않나요 갖은 발버둥 끝에 와시즈 앞에 빤히 보이는 알몸으로 서게 된 아카기와 그의 모든 것을 본 이후에 그와 연결된 와시즈라는 이 비유,,,,,))
5. 구구절절 길어졌지만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와시즈전은 "나"를 지키기 위한 길고 긴 "고립"과 "연결"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 고립하고자 하는 와시즈와 끊임없이 방해하는 아카기의 대결... 그러다 와시즈가 완전한 연결로 노선을 틀자 사실 연결은 이용만 하려고 했던 아카기까지 덩달아 고립이 위협 받고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난 승부...재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