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 SS 스포+약고어(괜찮으신 분들만 클릭)
이소이 레이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늦었음을 자각했다. 방금 전 들린 소름끼치는 음 사이에 무언가가 찢어지고 터져나오는 듯한 소리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비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게 더 끔찍했다. 쇠파이프가 아무렇게나 쌓여 기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길목을 달려 모퉁이를 돌아가보면.
아토 하루키가.
심장이 뚫려있다.
결코 위생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슨 쇠파이프를 타고 붉은 것이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소이 레이지는 온몸의 근육이 굳었다가, 단숨에 피가 쓸려내려갔다가, 머리 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차례대로 인식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물론 머릿 속은 엉망이다. 눈 앞에서 사람이 산 채로 꿰뚫려있는데 제정신인 쪽이 어떻게 되어있을 것이다.
아아, 하지만. 이 사람을, 이 사람을 어떻게든 해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아토 하루키가 눈을 떴다. 실핏줄이 터져 새빨간 눈에 적갈색 눈동자가 섬찟했으나 이소이 레이지는 우선 그에게 의식이 있음에 감사했다. 형, 내 말이 들려요? 정신 놓지 마요! 레이지가 더듬더듬 다가가는 동안 아토 하루키는 희미하게 웃었다.
(생략)
어찌어찌 파이프를 뽑아내면 상황은 심각했다. 파이프가 긁어내듯이 파낸 상처자국 사이로 부서진 갈비뼈와 짓눌려터진 혈관에서 붉은 피가 봇물처럼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그대로 두었다면 두는 대로 상처가 짓눌려 피범벅이 되었겠지. 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지.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는 덜렁이는 살조각이 보인다. 패닉을 맞이한 이소이 레이지가 큰 숨을 들이쉬는 사이 하루키가 입술을 움직거렸다.
"괜찮아."
뭐가,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데요. 그렇게 말하려던 이소이 레이지는 무언가를 본다. 떨어나간 살조각과 핏줄기와 혈관이 하루키의 심장께에서 천천히 한 덩어리를 이루는 모습을 본다. 꿈틀대로 질퍽이며 하나가 된 그것은 어딜 보나 어엿한 포도의 형태를 하고있었다. 하지만 핏덩어리로 이루어진 탓에 열매가 번들거렸다. 마치 식물의 생장과정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마냥 포도로부터 뻗어나간 붉은 덩굴이 뼈를 붙잡고 근육과 내장으로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며 아토 하루키의 호흡에 맞춰 두근거린다. 피비린내 선명한 재생 앞에서 이소이 레이지는 현기증을 느낄 지경이 되었다.
(생략)
"별일이네, 포도 싫어해?"
"그렇네요. 앞으로 못 먹을 것 같아요."
이소이 레이지의 말에 침대에 앉은 아토 하루키가 고개를 갸웃거리곤, 청포도 한 알을 떼어 입에 밀어넣었다.
오도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