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알라토텝의 가면들 미국편 초반 플레이 후기.
알면서도, 예상했음에도 속절없이 가슴이 무너진(+) 플레이어의...(방어 무시 관통 대미지)
분명 이 운명을 예감했음에도 생생하게 슬퍼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티알피지 레슬링이 실현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새벽에 이레님이 후기로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갈 만한 지점들을 짚어주셨는데 역시 포인트를 너무 잘 잡으십니다.
📍 후기에 들어가면 좋은 것
- 탐사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 탐사자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
- 탐사자가 엘리어스의 부탁을 (험난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것이나 보고 싶은 장면
페루편-미국편 초반(엘리어스의 유지 받아들이기)까지가 정말 그 자유도 높지만 스토리 비중이 있는 오픈월드 게임의...튜토리얼 오프닝이 막 끝나고 본편이 시작하는 느낌과 똑같았어요. 호라이즌 제로 던이라던가...
안내자의 죽음이란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운명적 동기죠...
이레님이 짚어주신 포인트들을 보고 자려고 누워서 생각해보니, 엘리어스의 죽음을 막 목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슬픔이 너무 커서 한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더라구요.
버나드는, 어차피 죽음을 워낙 많이 겪은 캐릭터인데, 고작 한 번 기묘한 모험을 함께 한 뒤로 별로 만나지도 못했던 인물의 죽음이 과연 그에게 특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
(이런 의문과 그에 대해 찾아낸 답이 언제나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답은 역시 우리가 함께 만든 세션 안에 있었습니다.
버나드가 지금까지 겪어온 죽음이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거나 이미 알게 된 시점엔 전염병이라는 재난이 쓸고 지나간 지 한참 뒤라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하기 어려운, 바꿀 수 없어서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엘리어스가 죽음은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이라는 생각을 계속 곱씹게 되는, 후회와 죄책감, 미련을 남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이런 후회와 생존자 죄책감은 전쟁에서도 겪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전쟁은 명백하게 죽음을 예비할 수 밖에 없는 비일상적 특수상황인 한편, 엘리어스는 뉴욕 한복판에서 살해당했으니 약간 경우가 다른 것 같습니다.)
버나드가 위험한 여정에 뛰어드는 시작점은 이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죄책감을 가진 채, 일단 엘리어스를 죽인 놈들을 잡고(잡아서 어떡할 것인가? 범인을 잡아족친다고 엘리어스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라는 부분은 아마 당장은 생각하지 않으려 머릿속 한 구석으로 밀어둘 것 같습니다.) 그가 남긴 유지를 이어받아 임한다...
엘리어스가 뛰어들었고, 미처 끝맺지 못한 채 자신에게 맡긴 일이 뭔가 굉장히 거대한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지만 아직까지 그게 정확히 어떤 실질적인 위험(자기자신이든, 이 세상이든)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실감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거대한 음모가 불러올 파동이 자신의...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사람들(동료 탐사자, 그레이스 트레인, 사진사 스승님 등)을 위협할 것이라는 걸 느끼면 죄책감 뿐만이 아니라 좀 더...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한다, 라는 느낌으로 모험에 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정을 쉽게 주는 무른 성격의 캐릭터라 앞으로 만날 인물들 중 정을 줄 만한 이들이 더 생긴다면 미래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네요.
페루편에서는 아직 삶에서 붕 떠버린 채 수동적 자살처럼 위험한 곳을 찾아다니는 식으로 모험을 했었죠. 페루편 이후 마음을 다잡고 살기 시작한 뒤에는...딱히 원대한 야망은 없지만 소시민적인 충실한 삶을 위해서 일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 근데 그렇다고 작은 일상을 누리기 위해서 위험에서 몸을 사리는 건 안 어울리는 캐릭터라, 일상에서 벗어난 모험에서 오히려 삶의 반짝임을 느끼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버나드라는 캐릭터의 사상과 신념에는 '독실했으나 전쟁 이후 깨져버린 신앙'이라는 키워드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세션 중에 뭔가 이야기할 거리가 더 생기면 좋겠네요. 물론 버나드의 신앙심이 어떤 상태인지는 제가 좀 더 설정을 면밀하게 생각해봐야겠습니다.